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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나는 마왕이다. 그렇게 불린다. 까마득히 먼 과거, 난세 속에 기연을 얻었고, 결국엔 한 나라의 왕이 되었다. 왕이 되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게 많았고, 늙지도 않은채 되는대로 살다보니 어느새 마왕이 되어있었다. 마음대로 부르라지. " 나기부터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보리스에게도 꿈이 있었다. 에스오펠트 최고의 마법사가 되는 것. 궁핍한 가정형편과 그에 뒤따르는 부모의 행패가 고단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당시대 최고의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미래가 유망한 청년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운명같은 첫사랑. 세상이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 같은 감상. 그러나 곧바로 마주하게 된 어쩔수없는 출신의 벽과 생각보다 심한 경쟁 속에 꿈이란 단지 꿈일 뿐이라는 생각이 젖어들고 있을 때였다. 전쟁이 일어났다. 정확히는 에스오펠트의 늙은 국왕이 이웃나라인 안텔로드에 정복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단지 탐욕뿐인 이 전쟁을 보리스 또한 빠져나갈수는 없었다. "아무리 전쟁이라도 지킬건 지켜야 해. 나는 아무리 너라도 선을 넘으면 용서하지 않을거야." 이솔렛-동료 마법사이자 당시 보리스의 연인-이 말했다. 사실 보리스는 도덕적으로 사는 것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이러한 그의 과격한 성향은 말과 행동에서 종종 드러날때가 있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순탄치 못했던 어린시절의 영향이 있었으리라. "... 내가 말이 심했어. 미안해." 그의 생각에 꼭 와닿지는 않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그녀의 싸늘한 목소리에 보리스는 수긍하는 척 꼬리를 흔들수 밖에 없었다. 전쟁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없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사람들의 삶도 마치 일터에 나가든 전투를 치루는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었다. 이따금 어떤 영웅들에 의해 대승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지만 보리스 배치된 지역은 이제는 적군들중에서도 반가운 얼굴이 생길 정도로 피상적인 전투만이 간헐적으로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깍아지른 절벽이 마주보고 ...

어린날의 수묵화

눅눅하게 젖은 한지 이리저리 번진 자국들 연필이었으면 지우개로 지웠을텐데.. 나는 왜그리 바보같았을까 흘리고 번지고 생각대로였다면 꽤나 멋드러졌을텐데. 교과서 속 무슨 선생이라던 사람의 그런 그림 옆 반의 어느 애가 그렇게 잘 그렸다는 그런 그림 그런것까지 바란건 아니었어 그냥 우리집 어딘가에 걸어둘 정도만 됐더라면. 수묵화가 무슨 잘못이겠어 먹은 먹이요, ...  뭐 그런것인데. 그냥 다시는 수묵화를 그리기 싫을 뿐이야. 나는 수묵화가 맞지 않나봐.

노를 저으라

가물은 호수바닥이든 폭풍 속 망망대해든 노룰 저으라 내 옆은, 잔잔한 호수 위 미끄러져가는 백조 사육되지 않으려 하지 않있느냐 그러니 노를 저으라 의심이 들면 의심하고 불만이 생기면 불평하고 비교하고 짜증내고 울고불고 그래도 노를 저으라 초라한 나뭇배에 처절한 몰골 장렬히 침몰한 탐험가들의 흔적 그러나 돌아갈길은 없다 그러니, 저어라.

회색소년

오늘도 그럭저럭 바쁜하루 재미없는 책을 또 한장 넘기네 이쯤이면 알지 주인공이 어떤 녀석인지 표지는 분명 소년만화였는데 멋진 액션, 로맨스, 꿈과 희망 뭐 이런것들.  그럴줄 알았는데. 까만 글씨들을 나열한 종이 위로 나는 미끄러져흐르네 긴 여행길, 무향의 종잇장 뭉치 얼룩진 기억들의 나이테 인생은 판타지가 아니고 멜로는 진작에 아니었어 소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파스텔빛 도시  회색 가로등 아래에서 무수한 그림자들 사이로 사라진걸까 사라지려한걸까 사라지게된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림자였을까

또 하나의 잠 못이루는 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이 밤 또 한 번의, 끝날 줄 모르는 시간. 온갖 번뇌에 몸부림치다 내일 또 해가 뜨면 훌륭한 사람인척 살아가야겠지 사실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미 누군가는 눈치챘겠지만, 나도 계속 그런 척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어쨋거나 살아가려면 별수없다. 나도 순수했던적이 있었구나. 그땐 몰랐는데. 다 컸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나도 참 앙큼했구나. 이제는 겪을만한 일은 다 겪어보고, 그야말로 사회인이 되었다. 더럽다. 가식적이고... 무엇보다 겁쟁이가 되었다. 무엇하나 자신있는게 없고 그 와중에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 되지 못한 것이 되기만 하면, 되기만 하면 된다고. 그런데 과연 되긴 될까 싶고. 나는 신기루를 좇았나 신기루를 좇다 목말라 죽을지언정 비린 낙타젖 따위에 만족하지 않겠다고 호기롭던 그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어 또 하나의 잠 못이루는 밤을 지낸다.

애석하게도

애석하게도 모든 일엔 끝이란게 있다. 그리고 우리는 끝의 존재를 미리 안다. 끝이 있기에 뭐라도 해보려하기도 하고 끝이 있는걸 알기에 손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끝이 찾아올 것임을 알기에 슬퍼하고, 안심하고, 용기와 절망을 얻는다. 뒤틀린 인과율을 더듬어 올라가다보면 결국엔 극소의 무엇인가로 수렴하는듯하더니 애석하게도 작은 점 조차 남기지 않는다. 실체의 지면 뒤쪽으로 쏙 빠진 허수의 공간으로.. 시작과 끝이란게 그런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과정이란게 있다. 줄줄이 헤쳐놓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아도,  결국엔 이리저리 돌고돌아 그곳에 닿는다. 다 의미없는 것이다. 본질은 그러한데, 어쨋든 과정이란것도 있기는 한지라, 여기에 이름을 붙여주다보니 그게 인생이다. 나에게도 사랑이 있었고, 꿈과 희망이 있었고, 이룬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나에게도 죄가 많았고, 평생 후회하며, 늘 이 이야기의 끝을 갈망했다. 매번 참 구질구질한 변명이 많았다. 나에게도 시작이란게 있긴 했었다.

노 아이디어

멍하니, 멍청해진 이 시간을 즐긴다. 애초에 내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나부터 제대로 알긴 하는지 근거없는 삶의 청사진에 흐뭇했다가 당장의 현실에 암울했다가 그래도 그 와중에 내가 가진것에 감사했다가 왜 이 정도밖에 없나 절망적이었다가 미웠다가, 그리웠다가 죽고싶다가, 살고싶다가 이 혼란 자체가 감사한 일 같기도. 적어도 완전한 절망은 아니니 형이상학적 가치를 추구하는게 과연 진정 내 모습인가 했다가 사실은, 형이하학적 세계로부터 추방당했던것이 아닐까, 괜한 찝찝한 마음에 그냥, 멍청해져버린 이 감각 위에 그저 붕- 떠본다. 아아, 이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