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나쁘진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말 나쁘지 않군. 여전히 할일은 많고, 뭔가 놓치고 있는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지만 뭐 어떠한가. 어찌저찌 넘어갈테고, 못넘어가면 싹싹 비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버티면 되고... 내 성질만 안버리게끔 하면 그만이라는게 그간의 경험에 의한 결론이다. 재미없다. 분명 처음엔 죽을듯이 힘들면서도 미래에 대한 설렘이 있었는데 이제는 똑같이 힘들어도 죽을거 같진 않고, 어떤 좋은 결과가 있어도 그다니 설레거나 뿌듯하지 않다. 뭔가 모든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진달까... 나 스스로를 어느 소설속 등장인물로 상상해본다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당연해보일터다. 열심히 하면 늦든 빠르든 좋은 결과가 있는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삼류도 이런 삼류 이야기가 없다. 사실 한편으로 경솔한 생각이기도 하다. 일반적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나만의 길을 가고자 했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했으며, 돌이킬수 없는 일을 후회하며 많은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 경솔하기 그지없는 마음가짐이다. 단지 운이 좋아 살아남은 주제에 제 실력인줄 알고 꺼드럭대는 것 아닌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쨋거나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외롭다고 혼자 분위기 잡고 사연있는 척 가오부리기에는 주변이 참 요란하고 이것저것 많다. 복이다 복.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지금 고작 막걸리 몇잔 마셨다고 꿈을 꾸고 있는가. 눈을 뜨면 또 언제 끝날지 모를 지옥이진 않을까. 수 많은 죽고자 했던 날들... 비겁고 치사하게 살아나와 여기서 막걸리 한잔 걸친다. 좋다. 나 혼자 어제 반쯤 먹다 남은 막걸리를 비우고 괜히 울적했던 옛날을 생각해본다. 나는 잊었는가 그때를. 그게 다 한낮 꿈이었던가. 정말 너무 많이 힘들었던 그 날들이 정말 지나가려하는가. 눈을 감으면 아직도 아련한데..
.... 다행히 동굴 끝 희미한 빛은 출구였다. 열심히 달려온 끝에 보이는 것이 거대한 절벽 위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기우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렇다해도 나는 아마 만족했을 것이다. 오는 길 중간에 사고로 죽지 않고 결말이라도 보았음에. 암흑으로 가득찬 동굴의 끝, 그 밖으로 나온 소감이라면? "뭐 별거 없네" 눈 앞에 펼쳐진건 광활한 정글이었다. 녹음이 우거지고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한 곳. 그토록 바라던 광경 아닌가? 기쁘기보다 허무한 마음을 들여다보자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싶다. 이제 집에 가고싶다. 우리의 탐험대, 정의의 용사 일행(?)의 얼굴들을 살펴보았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안도감과 허탈감, 갈 곳 잃은 마음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으나, 나로서는 우리의 탐험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졌는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고 다행으로 여겨졌다. 우리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운만 떼면 나머지 이야기들은 그들이 메워줄테니까. 비가 온다. 비유가 아니라, 한밤중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을 달리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채 1년도 되지 않았다니. 그때의 나는 지금을 상상이나 했을까? 까딱 잘못하면 가는 거였는데, 그땐 오히려 독기가 바짝올라서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덤벼들었었다. 정말 미친놈이었지. 내가 또 그럴 수 있을까. 새로운 모험이 있다. 이 이야기가 성장소설이라면 새로운 모험이 '기다린다' 라고 말해야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 그냥 '있다' 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모험이라는 것은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다짐으로 떠날 순 없는 것이다. 아마 이 이후로는 또 다시 힘들고 우울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다. 안타깝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