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행히 동굴 끝 희미한 빛은 출구였다. 열심히 달려온 끝에 보이는 것이 거대한 절벽 위 천장에 뚫린 작은 구멍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기우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렇다해도 나는 아마 만족했을 것이다. 오는 길 중간에 사고로 죽지 않고 결말이라도 보았음에. 암흑으로 가득찬 동굴의 끝, 그 밖으로 나온 소감이라면? "뭐 별거 없네" 눈 앞에 펼쳐진건 광활한 정글이었다. 녹음이 우거지고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가득한 곳. 그토록 바라던 광경 아닌가? 기쁘기보다 허무한 마음을 들여다보자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싶다. 이제 집에 가고싶다. 우리의 탐험대, 정의의 용사 일행(?)의 얼굴들을 살펴보았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안도감과 허탈감, 갈 곳 잃은 마음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으나, 나로서는 우리의 탐험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졌는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고 다행으로 여겨졌다. 우리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운만 떼면 나머지 이야기들은 그들이 메워줄테니까. 비가 온다. 비유가 아니라, 한밤중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속을 달리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게 채 1년도 되지 않았다니. 그때의 나는 지금을 상상이나 했을까? 까딱 잘못하면 가는 거였는데, 그땐 오히려 독기가 바짝올라서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덤벼들었었다. 정말 미친놈이었지. 내가 또 그럴 수 있을까. 새로운 모험이 있다. 이 이야기가 성장소설이라면 새로운 모험이 '기다린다' 라고 말해야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 그냥 '있다' 라고 말해야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모험이라는 것은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것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다짐으로 떠날 순 없는 것이다. 아마 이 이후로는 또 다시 힘들고 우울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다. 안타깝게...
보리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멸문당한 귀족가문 소년이 고난 끝에 자신의 사람들을 지켜낸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가문은 이미 멸망했기에 지켜낸 사람들이란 도망자의 삶 중에 새롭게 만난 인연들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주인공이었던 만큼 때때로 나 스스로를 보리스라는 캐릭터에게 이입해보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내 삶이 그와같이 극적이거나 그다지 멋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시의 시점에서는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이대로 무너지는 건 아닌가 싶은 위기들이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나의 노력은 미약했고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피나는 노력을 해왔기에 어떻게 보면 경지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임기응변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렇게 인구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유일한 사람은 아닐지언정 희소한 사람은 되지 않나, 스스로를 평하곤 한다. 아, 물론 별로 의미는 없다. 아주 한정된 상황 하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능력이기에. 요즘 유행하는 초능력물에 비유하자면 A에서 D 중 D 등급쯤에 해당하는 능력일까. 스스로에 대한 비판은 이 정도고, 굳이 누군가가 나의 삶의 관람한다면 썩 우연의 연속으로 보일법하다. 누군가의 소설 습작이라도 되듯, 나름대로의 큰 위기들이 있었고 마치 이야기속 주인공이 대부분 그렇듯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던 위기들을 극복해왔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 한번쯤 생각해볼만 하다. '사실 나는 어떤 이야기 속 주인공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이라고 잠깐 생각해보고는 까맣게 잊고 여느때와 같은 '이야기' 속 일상을 지내던 중 한 사내를 마주치면서 나의 이야기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만족스러운가요?" 출근길 지하철을 타기위해 길을 가던 중 얼핏 눈이 마주친 사내가 물었다. '뭐야, 사이비인가?' "예?" 원래라면 대꾸도 하지 않고 지나쳤을테지만, '이야기'라는 뜬금없는 표현에 나도 모르게 대꾸를 뱉어버렸다. 속으로 괜히 대꾸를 ...